|
 |
|
|
|
|
HOME 열린마당 QuizQuiz |
|
가장 똑똑하지 않은 사람의 의견 |
|
작성자 l
최상준 [hamonic] 등록일 l 11-12-05 19:19
조회 l 149 |
|
저도 이것이 만인의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언제든 반박할 수 있는 생각이죠. 하지만 저에겐 어느정도 충분한 답이 되었습니다.
김성기님게서 하고 계신 고민은 철학적으로 '존재론'에 속하며 그 중에서도 '자아'에 대한 고민에 해당하는 것 같네요. ㅡ자아는 존재하는 것이며, 존재한다면 어떤 형식으로 존재하는가.
이에 대한 종교적 입장에는 크게 기독교/불교의 가치관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ㅡ전자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하는 반면, 후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죠.
과학적으로는 인간의 사고를 뇌와 호르몬/신경세포와 전기자극으로 치환시키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상상하고 꿈꾸는 모든 희망과 절망을 대변하진 않습니다. 뇌라는 기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할 뿐이죠. 해부학적으로 '자아'가 어느 기관에 존재하는지 밝히는 것은 요원한 목표일 뿐이죠.
종교도 중세철학시대의 한 철학의 갈래로 보고 과학이라는 것도 계몽주의 시대에 데카르트가 정립한 철학의 줄기로 봅니다. 철학에서 자아-세계의 질문은 끊이지 않았던 질문이며 존재론은 철학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자, 모든 철학의 근간이죠.
철학은 크게 현대이전과 현대철학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현대 이전의 철학에서 자아에 대한 담론들은 <나는 존재하는가>와 <나는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왔죠. 그런데 이것은 자아에 대해 고민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질문인듯 보입니다. 자아라는 것을 우리가 <무엇>이다라고 과연 잘 정의 할 수 있을까요?
한 예로 자아라는 것에 대해 말하는 순간 그 말은 틀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엄청난 숙고로 인해 자아를 정의하는 말을 내리면 그 자아에 대해 생각하는 자아를 또 정의해야 하기 때문이죠. 자신이 아닌 어떤 엄청난 과학자와 기계가 나를 정의 한다해도 그 사실을 듣고 생각이 바뀐 나에 대해서는 또다시 생각을 해봐야 할 겁니다.
저 산 너머에 정자가 한 채 있다.
이 말을 잘 정의된 것처럼 보입니다. 누가 부수지 않는 이상, 거기에는 그 정자가 있을 것이고 내가 1천년을 살지 않는 이상 그 정자는 정자의 형태를 하고 있겠죠. 우리 자아는 그렇지 않지만.
자아는 수많은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과학적으로도 두뇌정도의 복잡계는 아주 작은 교란에도 나비효과가 심해서 잠시 후도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몇 년을 그대로인 산 너머 정자와는 다르죠.
현대 이전의 철학의 자아상은 정적이고 정의 가능한 무엇인가의 본질로 통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 이후의 철학에서는 생철학이 대두됩니다. 생철학은 실존주의로도 대표될 수 있는데요. 니체가 대체로 그 효시라고 여겨지며, 더 내려가면 쇼펜하우어를 효시로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가장 대중에게 크게 알려진 사람은 샤르트르가 있죠.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그것이 나이다> 좀 말이 이상하죠. 다 제 탓입니다. 여기서는 좀 더 동적인 자아상을 생각합니다. 삶이란 어떠한 본질적인 내가 고정되어 있어서 세상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 핀볼의 공을 튀기는 것이며, 나는 쇠공으로 잘 정의되어 그저 미래로 내려오는 것뿐인 것 같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이 자아가 개현되며 새롭게 밝혀지면서 <내가 진정한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ㅡ관뚜껑 닫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뭐 이런 사고방식이죠.
삶이란, 그리고 자아란 그 누구도 열어볼 수 없는 블랙박스 같은 겁니다. 혹은 내가 들여다 보려고 할 수록 오히려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비슷한거기도 하죠.
수천년동안 인류의 지성이 이에 대해 내린 결론은 가만히 앉아서 내가 누구인지 쫒고 고민하기보다는 밖에 나가서 '삶을 살라'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매순간에서 선택하고 어떠한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그것이 나이기 때문이죠. 나는 누구인지 평생 알 수 없는 일이고 내가 죽고 나서 내가 없어지고 나서야 사람들에 의해 내가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겁니다.
이러한 실존주의적 사고방식은 인간에게 '절대절명'의 자아의 존재와 근거를 주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허무주의(니힐리즘)'에 빠질 가능성도 내포합니다. 그야말로 정말 인간은 그저 우주의 한낫 먼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저는 인간이 자아의 존재와 근거를 끊임없이 찾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고 그것을 부정하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가 주검을 붙들고 몇 날 며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거죠.
오랜 시간동안 악몽처럼 붙들고 있던 그 시험지에 정답은 없던 겁니다. 어서 시험지 따위 찢고 나가서 우리는 즐거운 소풍을 떠납시다!
|
|
|
|
|
|
|